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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목차]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의 삶에 허구가 가미된 영화다.

    '옹주'는 조신시대, 왕과 후궁이 낳은 딸을 부르는 말이다.

    덕혜옹주는 늦은 나이에 낳은 고종의 유일한 딸로 고종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녀가 14살이었을 때 일본제국의 강압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녀는 일본에서 강제 결혼을 하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다시 이혼하고, 딸의 자살까지 격은 비극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대한제국을 떠난 지 37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허진호 감독은 어느 날 TV에서 다큐멘터리에 '덕혜옹주'대해 방송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37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덕혜옹주를 맞이하는 궁녀들의 모습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별 후 다시 만나다'라는 그 만남 자체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덕혜옹주'의 삶을 보며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유학을 강요당한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이 늦은 나이에 낳은 유일한 딸로서 고종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일본으로부터 딸을 지켜주고 싶었던 고종은 딸과 김장한의 혼례를 계획한다.

    이미 아들이던 영친왕을 일본으로 인질처럼 보낸 고종은 덕혜옹주를 걱정했던 것이다.

    어느 날, 덕혜옹주는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려고 고종을 찾아간다.

    하지만 고종은 식혜를 마시다 일본으로부터 독살되고 죽은 고종을 본 그녀는 충격받는다.

    고종이 죽자 덕혜옹주와 김장한의 혼인 계획은 취소된다.

     

    덕혜옹주가 14살이 되던 어느 날, 친일파 한택수가 덕혜옹주에게 기모노를 보낸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기모노는 복순에게 입으라 하고 그녀는 정장을 입어 일본에 대항함을 보여 준다.

    또한, 그녀는 조선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애국심을 보이기도 한다.

    한택수는 덕혜옹주가 위험인물이라 생각하고 양귀인을 볼모로 두고 덕혜옹주를 협박한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한택수의 협박대로 일본 유학을 가게 된다.

    강제 유학에 오른 덕혜옹주에게 양귀인은 보온병을 건네며 함부로 물을 마시지 말라며 조심하라는 당부를 한다.

     

    한편, 김장한은 조사하러 일본에 가게 되고 도쿄에 있던 영친왕 저택에 들리면서 그는 덕혜옹주를 떠올린다.

    성인이 된 덕혜옹주는 영친왕의 저택에서 지내며 조선으로 갈 날만 기다린다.

    하지만 한택수가 덕혜옹주의 귀국을 미루자 그녀는 실망하고, 그녀에게 김장한이 찾아온다.

    일본 군대의 장교였던 김장한은 이우와 독립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를 감추기 위해 한택수와 가깝게 지내며 일본에 충성하는 척한다.

    이후, 이우는 덕혜옹주에게 그녀를 조선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하고 비밀작전을 계획한다.

    하지만 한택수에게 비밀작전이 발각되어 무산되고 장한과 덕혜옹주는 도망치다 우여곡절 끝에 영친왕의 저택으로 간다.

    김장한은 음악 레코드판과 양귀인의 편지를 주며 우울한 덕혜옹주를 위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양귀인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조선으로 가려고 했지만 한택수는 그녀에게 조건을 건다.

    조건은, 조선 노동자들 앞에서 친일 연설을 하면 조선 방문을 허락해 주겠다는 것이다.

    양귀인이 보고 싶었던 덕혜옹주는 친일 연설을 읽기 시작하지만 끝내 끝까지 읽지 못하고 조선 노동자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한다.

    이에 분노한 한택수는 덕혜옹주의 뺨을 때리고 복순을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을 계획하고 계획을 실행한 덕혜옹주와 독립운동가들은 성공한 듯했으나 갈등하던 영친왕의 망명 거부로 인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영친왕은 일본군에게 잡히고 덕혜옹주에게 뛰어가던 김장한은 한택수에게 총을 맞는다.

    그리고 덕혜옹주는 한택수의 계획대로 소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딸을 낳는다.

     

    1945년 8월 15일, 덕혜옹주는 라디오에서 일본의 항복 선언 방송을 듣고는 너무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딸을 끌어안는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덕혜옹주는 딸과 함께 시모노세키 항에서 배를 기다린다.

    하지만 조선 측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하게 되자 당황한 덕혜옹주는 자신은 조선의 황녀라며 주장하지만 미군에 의해 내팽개쳐진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택수는 덕혜옹주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한택수는 덕혜옹주에게 그녀가 다시는 조선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미군의 안내를 받으며 입국한다.

    충격받은 덕혜옹주는 미친 듯이 웃으며 쓰러지자 그녀의 딸은 그녀가 무서워 도망친다. 

    결국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961년 김장한은 소 다케유키의 집으로 찾아가 덕혜옹주의 물건들을 찾는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터라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는 이혼을 하고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다.

    그리고 덕혜옹주의 딸은 자살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던 김장한은 드디어 복동과 덕혜옹주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원을 찾아낸다.

    그리고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당시 정부에게 간절한 설득을 한다. 

    오랜 고생 끝에 한국에 오게 된 덕혜옹주를 맞이하러 나온 궁녀들은 그녀에게 절을 올린다.

    덕혜옹주는 이미 늙은 할머니가 된 궁녀들 중에서 복순을 알아보고 재회의 눈물을 흘린다.

    덕혜옹주는 김장한과 함께 덕수궁에 가고, 그곳에서 고종과 양귀인이 그녀 자신을 반기는 꿈을 보게 된다.

     

     

    실존 인물 '덕혜옹주'  

    1945년 8월 15일은 한국이 일본에게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다시 찾은 광복절의 날이다.

    덕혜옹주는 광복이 되었음에도 당시 정부의 반대로 17년이나 더 타국에 머무르게 된다.

    1961년 1월 26일,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난 지 3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김포공항 앞, 그녀를 맞이하는 궁녀들은 50살이 훌쩍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가 된 궁녀들은 과거 궁에서 입었던 의복을 입고 덕혜옹주를 '아기씨'라 부르며 덕혜옹주를 맞이했다. 

    고생으로 가득한 덕혜옹주의 얼굴을 본 궁녀들은 통곡하며 울었다.

     

    궁으로 돌아온 덕혜옹주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는지 궁안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10대 후반부터 그녀의 주변 상황들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낙선재에 살던 덕혜옹주는 간혹 죽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슬픈 얼굴을 보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1989년, 그녀의 나이 76세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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